소아비만으로 치료받으러 온 초등학교 3학년 박군은 들어와서도 불안한 듯 주위를 연신 살피고 면담에 집중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것저것 만지거나 요구사항이 많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조심스럽고 눈마주치기를 못하는 박군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면담도중 박군은 자신도 모르게 불안하다고 하였다. 박군의 불안증의 근원에는 생각과잉이 있었다.

현대인들은 생각과잉시대에 살고 있다.


생각과잉은 정보과잉에서 온다. 우리 청소년들은 정규적인 학습정보와 비정규적인 감각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국영수의 거대한 수레바퀴 밑에서 자신의 머리와 몸을 혹사시킨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공부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마저도 정보과잉의 변형된 형태이다. 틈만 나면 컴퓨터를 통해 게임이나 온라인 서핑에 몰두하고 스마트폰을 통한 게임과 문자 보내기, SNS 등으로 소일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아이들의 머리는 전압이 높아진 플러그처럼 언제 누전될지 모르는 화재경보상태에 돌입한다.


정보과잉이 반복되면 머리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정보가 들어갈 틈이 없는 정체현상에 빠지거나,유익하거나 새로운 정보는 거부하고 자신의 뇌에 아부하는 쾌락성 정보만을 추구하는 중독적상태에 빠진다. 중독과 정체는 무기력을 낳아 얼키설키 뒤엉킨 생각들은 질서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복회로를 구축하는데 이 반복회로의 특징은 부정적인 걱정의 확대재생산이다.


박군 역시 생각중독의 증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한가지 걱정이 떠오르면 그 생각 때문에 매우 괴롭고 불안하다고 하였다. 학교성적이 최상위권인 박군이 생각중독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학업에 대한 강박관념이다. 맞벌이 부부인 박군의 부모님은 박군의 학업성적에 대한 집착이 강했는데 박군은 엄마가 돌아오는 저녁시간이 되면 예외 없이 불안해진다고 하였다. 특히 엄마의 학업에 대한 집착은 아들에 대한 헌신의 한 형태라는 나름대로의 신념과 전업주부에 비해 많이 돌봐주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보상심리로 더욱 강화되었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다가 저녁에 만나면 기쁘고 설레야 할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학업에 대한 몰입적 관리로 일관되자, 아이에게는 저녁시간이 불행의 시간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단맛음식먹기 중독인 박군에게 생각중지훈련을 처방하였다.


박군은 이러한 공부스트레스에 대한 부담감을 단맛음식먹기로 풀고 있었다. 용돈이 생기면 엄마몰래 과자를 사서 책상 한구석에 숨겨두기 십상이었다. 그러다가 엄마한테 들켜 혼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와 책상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과자를 발견해서 매정하게 압수를 하면 그렇게 엄마가 야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과자중독이 된 박군에게는 엄마가 폭군처럼 보일 법도 하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박군의 소아비만은 차치하고라도 모자관계의 균열이 불 보듯 뻔하였다.


심리치료와 운동치료, 영양치료를 병행하면서 일단 박군과 어머니에게 식사 중 생각중지훈련을 처방하였다. 박군의 폭식과 숨어먹기로 체중이 늘어나자 엄마는 식탁에서 박군의 먹기를 과도하게 통제하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식사시간이 전쟁터가 된 까닭이다. 하루 세 번 주어지는 소중한 식사시간마다 음식에 집중하며 불편한 생각들을 비우는 생각중지의 시간을 갖도록 하였다. 엄마에게는 잔소리보다는 하루 동안의 일과를 물어보고 아이의 노고를 치하하도록 부탁 드렸다.


좀 익숙해지자 엄마와 함께 하루 수 차례 반복하는 생각중지 훈련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생각이 스트레스가 될 지경까지 폭주할 때 우리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약 10분 정도 행하는 이 생각중지 시간은 단지 10분 동안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경험은 물론이고, 실천자들의 경험에서도 적어도 생각의 30퍼센트 가량을 줄이는 효과를 감지할 수 있었다.


생각들이 마음대로 내 마음을 지배하며 소용돌이치는 것을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때때로 마음 한켠에 놓인 생각 브레이크를 움직여 그들의 방종을 막아야 생각에 마음이 탈진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박군과 박군의 어머니는 규칙적인 하루 10분의 생각중지훈련을 통하여 서로를 좀더 편안한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박군의 숨어먹기와 폭식도 따라서 점차 사라졌다.


TIP. 생각중지 훈련의 ABC


하나, 생각중지 훈련이 아직 서툴다면 가급적 조용한 장소를 찾아 가라.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지금 앉아 있는 책상이나 의자에서도 생각중지를 할 수 있다.


둘, 문제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찰 때 다른 건강한 생각을 곁들이라. 여러 생각이 흐르도록 해 문제 생각이 마음을 독점하는 상황을 차단하는 것이다.


셋, 생각을 중지할 준비를 하라. 전자시계나 모래시계를 이용해 중지 순간을 정하는 것도 좋다. 손목에 차고 있던 고무줄을 튕기거나 손바닥을 딱 치는 것도 생각중지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


넷, 문제 생각이 끊어지도록 생각중지 혹은 stop을 강하게 외치라.


다섯, 10분 정도 머리에 생각이 텅 빈 상태를 유지하라. 문제 생각이 끼어들려고 할 때 강하게 제지하라. 너한테 관심 없어, 사라져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라.


여섯, 눈을 감는 것이 정석이나 숲이나 화분, 그림 등을 보면서 해도 좋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